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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은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책 리뷰: 왜 가난한 사람은 항상 더 바쁜가

by iceviola 2025. 4. 22.

결핍은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봤을 땐, 심리학적 자기계발서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첫 장을 넘긴 순간부터, 그런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결핍은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는 단순한 ‘결핍이 우리를 단련시킨다’는 식의 이야기가 아니다.
경제학자 센딜 멀레이너선과 심리학자 엘다 샤퍼는 결핍이 인간의 인지, 판단, 선택, 집중력까지 어떻게 바꿔놓는지를
실험과 데이터를 통해 차근차근 밝혀낸다.

읽는 내내, 내 사고의 틀도 함께 바뀌는 경험이었다.


결핍이 만드는 심리적 터널링 효과

책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개념은 터널링(tunneling)이다.
이는 결핍 상태에 놓인 사람이 당장의 문제 해결에만 몰두하게 되는 심리적 ‘시야 좁힘’ 현상을 말한다.

 

예를 들어, 가난한 사람이 고금리 대출을 반복해서 쓰는 이유, 시간이 부족한 사람이 오히려 시간을 더 낭비하는 선택을 하는 이유, 집중력이 필요한 상황일수록 더 충동적인 결정을 내리는 이유 모두 바로 이 터널링 효과로 설명된다.

책은 이 개념을 단순히 설명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실제 실험을 통해, 결핍이 있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인지 능력이 일시적으로 IQ 13점 가까이 낮아질 수 있다는 데이터를 보여준다.


이는 단지 “가난해서 무계획하다”는 편견을 완전히 뒤엎는 결과였다.
가난해서 그런 게 아니라, 가난이 인간의 사고 능력 자체를 제한한다는 것.
그 사실 하나만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구조적 결핍은 개인의 의지를 무력화시킨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결핍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라는 사실이었다.
우리는 흔히 "왜 저 사람은 저축을 못 하지?", "왜 건강을 돌보지 않지?", "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라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들은 말한다.

 

결핍 상태에 빠진 사람은 일종의 인지적 조울 상태를 경험한다.
잠깐의 여유가 생기면 과도하게 희망하고, 곧 다시 닥친 부족함 앞에 더 무기력해진다.

이 사이클은 개인의 ‘성향’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반복되는 심리적 패턴이다.

 

의지의 문제로 돌릴 수 없는 반복.
그걸 보고 나니, 가난이나 시간 부족, 외로움 같은 것들이 생각보다 훨씬 더 뿌리 깊고 구조적이라는 걸 실감하게 됐다.


결핍을 ‘디자인’으로 보완할 수 있다는 제안

이 책이 특별한 점은, 문제를 분석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행동경제학자답게, 결핍 상태에 놓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디자인적 개입’을 제안한다.

 

예를 들어, 소액 대출 제도를 단순화하거나 시간 관리가 어려운 사람을 위해 자동 알림 시스템을 도입하는 식이다.

실제로 인도와 미국 등에서 진행된 다양한 정책 실험 사례도 소개된다.
작은 개입으로 사람들의 판단력과 행동 패턴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보며 ‘사람을 바꾸려 하지 말고,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메시지가 깊이 박혔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더 이상 ‘결핍’이라는 말을 쉽게 쓰지 않게 됐다

책장을 덮고 나니, 내가 그동안 얼마나 가볍게 ‘시간이 부족해’, ‘돈이 모자라’ 같은 말을 써왔는지 돌아보게 됐다.
이 책이 다루는 결핍은 그런 일시적 불편함이 아니다.
그건 사람의 인지 구조를 흔들고, 판단력을 제한하며, 심지어는 인간 관계와 자존감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그 결핍은 대개 사회적 약자나 불균형 구조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집중된다.
이 책은 그런 사람들을 판단하기 전에, 왜 그런 선택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지를 이해하라고 말한다.
이해는 변화를 만드는 첫걸음이고, 그 이해를 돕는 데 이 책은 놀라울 정도로 명확하고, 정직하다.


최종 평점: ★★★★★

결핍을 단순한 결함이 아닌, 인지적·심리적 구조의 결과로 풀어낸 놀라운 책.
사회, 정책, 교육, 복지를 고민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자신의 반복되는 선택에 지쳐 있는 사람에게도 강력히 추천한다.
생각의 각도를 완전히 바꾸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