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떠나지만, 감정은 남는다.
『당신을 만나지 않았더라면』은 그 ‘남은 감정들’이 얼마나 조용히, 그러나 깊이 삶을 흔드는지 보여주는 책이었다.
권지명 작가는 이 책에서 특별한 사람과의 이별, 그 이후 혼자 남은 감정의 층위를 절제된 언어로 차곡차곡 쌓아 올린다.
단순히 ‘슬픈 에세이’가 아니라, 관계가 지나간 자리를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를 조용히 묻고 있는 책이다.
상실의 순간은 끝이 아니라, 감정의 시작이었다
이 책은 이별의 순간에서 출발하지만, 이별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책을 읽다 보면 상실 이후의 시간이 훨씬 더 길고 복잡하다는 걸 알게 된다.
사람이 사라진 자리는 빠르게 비워지지 않는다.
오히려 함께 했던 말, 나누었던 시선, 무심코 쥐어줬던 손의 감각들이 훨씬 선명하게 되살아난다.
작가는 그 감각들을 지우려 하지 않는다.
대신 묻고, 다시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자신을 회복해간다.
그 과정은 고통스럽지만, 읽는 독자에게는 묘하게 따뜻하다.
아픔을 직접 꺼내 보여주는 글에는 어떤 종류의 공감이 생긴다.
나 아닌 누군가를 통해 나를 이해하게 되는 순간들
관계란 결국 ‘타인을 통해 나를 보는 과정’이라는 걸 이 책을 통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작가는 상대를 그리워하면서, 동시에 그때의 나를 마주하게 된다.
왜 그런 말을 했는지, 그때 그 눈빛이 어떤 의미였는지, 내가 정말로 사랑했던 건 그 사람이었는지, 아니면 외로움에 기댄 내 감정이었는지를 조심스럽게 되짚어보게 만든다.
이런 질문은 떠나간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자신에게 하는 질문이다.
이 책의 문장들은 감정을 정리하기보다는, 그 감정에 다가가기를 택한 기록들이다.
그래서 무겁지만 가볍고, 슬프지만 어딘가 부드럽다.
회복은 완전히 괜찮아지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품고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일
『당신을 만나지 않았더라면』은 상실 이후의 회복을 말하지만, ‘완벽한 극복’이라는 단어는 사용하지 않는다.
작가는 슬픔을 떨쳐내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감정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그 감정을 언어로 옮기는 과정을 통해 자신을 더 이해하게 된다.
이런 태도가 진심으로 좋았다.
힘든 감정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하는 대신,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품을 수 있다고 말해주는 책.
독자로서도 위로를 강요받는 느낌 없이 스스로 위로에 닿게 되는 방식이었다.
『당신을 만나지 않았더라면』은 관계를 떠나보낸 모든 이에게 보내는 편지다
이 책은 특정한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쓴 글이지만, 읽다 보면 각자의 ‘그 사람’을 떠올리게 된다.
사랑이든, 우정이든, 가족이든.
어느 날 문득 떠나버린, 그럼에도 오래 남아 있는 관계 하나쯤은 누구에게나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그런 마음을 조용히 꺼내 보여준다.
힘을 주지 않고, 그렇다고 무너지지도 않은 채.
그런 문장은 마치 편지처럼 마음에 도착한다.
최종 평점: ★★★★★
슬픔을 말하면서도, 희망을 말하려 하지 않아 더 진심인 책.
감정을 억누르기보다, 끝까지 들여다보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은 꼭 필요하다.
그리움도 회복이 된다는 걸 보여주는 문장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