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제목을 처음 봤을 때부터 의문이 들었다.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니, 무슨 말이지?’
생물학적으로 분명 존재하는 것 같은데 왜 이런 제목을 붙였을까.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단순히 물고기 이야기나 과학 이야기가 아니다.
질서와 혼돈 사이에서 인간이 얼마나 집착하고 무너지는지를 이야기하며, 궁극적으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깊은 질문을 던진다.
물고기라는 분류조차 인간이 만든 착각일 수 있다
책에서 말하는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생물학적 분류 체계에 대한 문제 제기에서 출발한다.
생물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세상의 혼란 속에서 생명체를 분류하고 이름 붙이는 일을 하며 질서를 찾아가려 했던 인물이다.
그는 1,000종이 넘는 ‘물고기’를 발견하고 분류한 인물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현대 생물학은 ‘물고기’라는 개념이 진화의 관점에서 실질적인 그룹이 아니라고 말한다.
‘물고기’는 포유류, 양서류 등과 구분되는 고유한 분류가 아닌 것이다.
이 설명을 읽으면서 묘하게 허무하고도 놀라웠다.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던 개념 하나가 사실은 인간이 편의를 위해 만든 분류였다는 사실.
질서라는 것도 어쩌면 진실이 아니라 현실을 받아들이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과 나, 그 사이의 불편한 닮음
이 책의 흥미로운 점은 작가 룰루 밀러가 단순히 과학자를 조명하는 전기적인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조던이라는 인물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본다는 점이다.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분류하고, 정리하고, 이름 붙이려는 시도는 단지 과학자의 태도가 아니라 살면서 불안정함을 견디기 위한 인간의 본능일지도 모른다.
나 역시 그랬다.
삶의 커리어, 관계, 감정, 의미에 대해 정답을 찾고 싶었고, 어떤 분류 안에 나를 끼워 넣으려 했다.
그게 질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생각에 질문을 던진다.
정말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가.
그렇게 붙잡은 질서가 언젠가 뒤집힐 수 있다는 걸 안다면, 우리는 혼란을 피하기보다 조금씩 받아들이는 쪽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질서를 향한 집착이 때로는 폭력이 되기도 한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한때 위대한 생물학자이자 교육자였지만, 그의 삶엔 어두운 그림자도 존재했다.
우생학을 지지했고, 인종과 능력에 따른 분류를 사회 구조에까지 적용하려 했다.
질서와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구분하고, 배제하고, 차별하는 이론을 주장했던 것이다.
책 후반부에서 이 부분을 읽으며 불편함을 느꼈다.
어떤 신념이 지나치면, 그게 아무리 과학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어도 결국 사람을 해칠 수 있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다.
무언가를 질서정연하게 만들려는 욕망이 누군가의 존재를 지우는 방식으로 작동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이성’이라 믿는 것들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이 책은 과학책이면서도 철학책이고, 동시에 윤리와 인간성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 ⚖️
혼란을 받아들인다는 것의 의미
책을 다 읽고 난 후에야, 왜 작가가 이 이야기를 이렇게 써 내려갔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세상은 원래 혼란스럽고, 삶은 늘 예측 불가능하다.
거기서 안전함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이름을 붙이고, 순서를 정하고, 구분짓는다.
하지만 그 질서는 때로는 환상이고, 때로는 폭력이며, 무너질 수도 있는 것들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새로운 방향으로 생각해야 한다.
정확한 답을 찾기보다는, 변화하는 과정 자체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법.
혼란 속에서도 살아가고, 불확실함 속에서도 의미를 만들 수 있는 방식.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런 방식의 시작점을 제시하는 책이다.
혼돈을 견디는 것, 질서에 집착하지 않는 것, 그게 어쩌면 오늘 우리가 배워야 할 삶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최종 평점: ★★★★★
질서에 기대고 싶었던 사람, 무너진 시스템 속에서 다시 길을 찾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은 특별하다.
단순한 과학 책이 아니라, 삶의 질문을 품은 깊은 이야기.
혼란을 겪는 모든 이에게 권하고 싶은 단단한 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