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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것들] 책 리뷰: 조용히, 그러나 깊게 흔드는 침묵의 문장들

by iceviola 2025. 4. 9.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단 한 줄도 허투루 쓰이지 않은 소설이다.
160쪽 남짓의 짧은 분량, 조용하고 담담한 문장들, 평범해 보이는 주인공.
그런데 책을 덮고 나면 마음 어딘가가 묵직하게 흔들린다.

이 책은 아일랜드의 가부장적 사회와 종교적 억압, 그리고 그 안에서 침묵당한 여성들의 현실을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빌 퍼럴'은 자신이 맡은 일을 충실히 해오던 평범한 중년 남성이다.
그가 어느 날 ‘마그달렌 수녀원’이라는 낯선 공간의 진실을 마주하면서,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삶이 아니라, 외면하지 않는 삶을 선택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읽으면서 가장 강하게 다가왔던 건, 작은 선택 하나가 얼마나 큰 울림을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작가의 깊은 통찰이었다.


1. 선하지 않은 시대에, 선하게 산다는 것

빌은 원래부터 영웅이 아니다. 동네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맡은 일을 열심히 해온 '좋은 사람' 정도다.
하지만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그런 보통의 사람이 침묵을 선택하지 않고, 어떤 불편한 진실 앞에 행동하기로 결심하는 순간을 조명하기 때문이다.

아일랜드의 마그달렌 수녀원은 실제로 존재했던, 미혼모 여성들을 강제로 격리하고 노동을 시켰던 공간이다.
그 끔찍한 시스템 속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지 않거나, 못 본 척하거나, 그냥 지나쳤다.

그런 시대에 누군가는 "나는 몰랐다"고 말하고, 또 누군가는 "알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작가는 빌의 작은 행동을 통해 조용히 묻는다.
당신은 무엇을 알았고, 무엇을 외면했는가. 그리고 지금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 핵심 교훈: 선함이란 거창한 정의가 아니라, 불의 앞에서 고개를 돌리지 않는 용기다.


2.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모든 게 변하는 이야기

이 소설의 놀라운 점은, 외형적으로는 큰 사건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갈등이 폭발하거나 누군가 죽거나 울부짖는 장면도 없다.
하지만 페이지를 넘길수록 독자는 점점 숨을 죽이게 된다.

작가는 ‘비침묵의 침묵’을 통해 독자의 감정을 극도로 밀어붙인다.
감정을 부풀리지 않고도, 오히려 감정을 짓눌러 놓은 채 인물의 내면을 따라가게 만든다.
빌은 확신에 차서 행동하지 않는다. 오히려 회의하고, 망설이고, 고개를 숙인다.
그 모습이 더 현실적이고, 그래서 더 깊게 파고든다.

한 사람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한 사람이 무언가를 ‘선택’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세상은 조금 변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강하게 남는다.


3. 문장은 짧지만, 울림은 길다

클레어 키건의 문장은 간결하다.
수식은 거의 없고, 설명도 절제돼 있다.
하지만 그 단어들 사이에 머무는 여백이 크고 깊다.

한 장면, 한 문장, 한 대화가 끝난 뒤,
그 안에 담긴 감정과 의미를 곱씹게 된다.
책을 읽는 동안보다, 책을 덮은 이후에 생각이 더 길게 이어지는 작품이다.

 

👉 인상 깊었던 구절:
“그는 이제 알고 있었다.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도.”


4. 책을 읽으며 느낀 점과 한계

이 소설은 빠르게 읽히지만 쉽게 잊히지 않는다.
특히 조용한 사람의 작지만 단단한 선택을 중심에 두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은 지금 시대에도 강한 울림을 준다.
무언가를 바꾸려 하기보다는, 나의 침묵이 어떤 방식으로 세상에 작용하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만든다.

다만, 극적인 전개나 뚜렷한 클라이맥스를 기대한다면 다소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또한, 아일랜드 사회의 배경이나 마그달렌 수녀원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다면 이해가 부족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인간다운 선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데 있어서 아주 정제되고 묵직한 작품이다.


5. 결론: 이 책은 누구에게 추천할까

  • 깊은 여운을 주는 짧은 소설을 찾는 독자
  • 조용하지만 강한 이야기 구조를 좋아하는 사람
  • 윤리적 딜레마, 사회적 침묵에 대해 고민해본 적 있는 사람
  • 문장보다 의미의 무게를 느끼고 싶은 사람

읽고 나면 조용히 마음을 건드린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사실은 가장 중요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오래도록 남긴다.


👉 최종 평점: ★★★★★
조용한 문장으로 깊은 울림을 전하는, 단단한 용기의 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