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색은 아무 색도 아니기에,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이유로, 가장 많은 것을 숨기고 있는 색이기도 하다.
홍한별 작가의 『흰 고래의 흼에 대하여』는 허먼 멜빌의 고전 『모비 딕』에 등장하는 ‘흰 고래’를 중심으로 ‘흰색’이라는 색채가 인간에게 어떤 정서적, 철학적 의미를 가지는지를 묻고 탐색하는 깊이 있는 에세이다.
책을 읽는 내내 한 가지 색을 이토록 다양한 시선으로 해석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새삼 ‘읽기’라는 행위의 끝이 없다는 걸 느꼈다.
왜 흰색은 순수보다 두려움을 먼저 불러일으키는가
보통 우리는 흰색을 평화, 순수, 결백의 상징으로 배운다.
하지만 『모비 딕』 속 백색 고래는 그와 정반대의 정서를 불러온다.
광기, 공포, 무한함, 그리고 해석할 수 없는 낯섦.
홍한별 작가는 『모비 딕』에 등장하는 흰 고래의 색이 왜 독자들에게 불쾌하거나 두렵게 느껴지는지를 고전 문학, 신화, 심리학, 종교적 상징까지 넘나들며 섬세하게 풀어낸다.
그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흰색이 무언가를 상징하기보다는 ‘상징 없음’ 자체를 드러내는 색이라는 역설에 도달하게 된다.
즉, 흰색은 공백이고, 그 공백은 각자의 내면이 투사되는 불확실성의 캔버스가 된다.
그래서 누군가는 경외를, 누군가는 공포를 느낀다.
고래는 상징이 아니라, 질문이다
책을 읽다 보면, 『모비 딕』이 단순한 모험 소설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워진다.
고래는 그 자체로 실재하지 않는다.
작중 인물들에게 고래는 각기 다른 의미로 작동한다.
운명, 재앙, 신, 자연의 분노 혹은 인간이 극복해야 할 대상.
홍한별 작가는 이런 상징의 다층성을 ‘읽기의 방식’이라는 관점에서 다시 조명한다.
어떤 독자는 고래를 읽고 신을 떠올리고, 어떤 독자는 인간의 욕망을 본다.
이처럼 해석의 다양성은 작품을 확장시키고, 독자 개개인에게 맞닿은 감정의 층위를 건드린다.
『흰 고래의 흼에 대하여』는 그 지점을 놓치지 않는다.
읽는다는 건 결국 내 안의 의미와 마주하는 일이라는 것을 문학적 언어로 천천히 설득한다.
한 권의 고전을 다시 읽게 만드는, 아주 지적인 독서 안내서
이 책은 단순한 『모비 딕』의 해설이 아니다.
읽기를 통한 사유의 확장이자, 색채 하나에서 출발한 존재론적 질문의 추적기에 가깝다.
작가는 곳곳에 문학 텍스트와 철학적 개념을 녹여내면서도, 결코 독자를 어렵게 만들지 않는다.
과하지 않은 비유, 정확한 문장, 무게감은 있지만 과시하지 않는 어조 덕분에 책 전반이 차분하면서도 깊다.
특히 고전을 읽고도 “잘 모르겠다”고 느꼈던 이들에게 『흰 고래의 흼에 대하여』는 읽기 자체에 대한 새로운 감각을 불어넣어주는 책이 된다.
『흰 고래의 흼에 대하여』는 색이 아닌 삶에 대한 이야기다
결국 이 책은 흰색을 말하면서 삶과 죽음, 존재와 무(無), 이해할 수 없음과 받아들여야 함 사이의 간극을 말한다.
그렇기에 흰 고래의 ‘흼’은 단지 시각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해석되지 않는 삶의 어떤 국면을 상징한다.
우리는 종종 명확한 답을 요구하지만, 어쩌면 가장 깊은 진실은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는 상태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게 바로 ‘흰색’의 정서이고, 『모비 딕』이라는 작품이 지금까지 회자되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최종 평점: ★★★★★
문학과 철학, 상징과 감정을 넘나드는 지적인 ‘읽기의 여정’을 함께하고 싶은 이에게 추천.
『모비 딕』이라는 고전을 다시, 새롭게, 더 깊이 들여다보게 만드는 에세이.